생일날 책 선물하는 것에 대하여
1호 - 생일 2013. 5. 9. 11:05 |나는 생일 선물을 잘 못 고른다. 다른 사람의 생일을 너무 잘 까먹어서 애당초 선물 사는 걸 잊는 경우가 대부분인 걸 고려한다고 쳐도, 하여간 생일 선물이란 것만큼 고르기 어려운 것도 잘 없다. (사실 뭐 그리 대단한 날도 아니잖은가?) 서로가 특별한 관계에 있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주변의 수많은 지인, 직장동료니, 학교 친구니 하는 가깝지만 먼 관계들인 사람들의 생일이란, 잊어버리면 실례이지만 또 일일이 챙기자니 부담스러운 그런 것이다.
하여간, 어찌 됐든 뭔가를 선물하기로 마음을 먹었다하자.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그런 사람의 생일이라고 하자, 아니면 존경하는 누군가이거나 호감 있는 이성이라고 해도 좋다. 너무 비싼 걸 고르자니 주머니 사정이 부담되고(혹은 상대가 부담스러워할 것도 같고) 너무 싼 걸 고르자니 아예 하나마나 한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마련이다.
이런책을 선물받았다고 생각해 봅시다...
적당한 가격대를 생각하다 보면 머릿속을 스쳐 가는 선택 중 하나가 바로 책 선물이다.상품권이나 먹는 음식처럼 쓰고 없어지는 선물보다는 좀 더 의미 있으면서 좀 더 오래 간직할 수 있는 ‘선물’ 로서 책은 매우 훌륭한 선택지 중의 하나다. 하지만 이 선택지를 취하는 것은 매우 고심되는 일인데,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대부분 꺼리는 선물 중의 하나가 바로 책이기 때문이다. 책도 책 나름이겠지만, 책이란 것이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수많은 언어, 그리고 메시지들의 집합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책이란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에게 어떤 의미를 파생시키기 마련이다.
예를 들면, 누군가한테 ‘성공하는 7가지 습관’ 같은 책을 선물했다고 가정해보자. 대체 그걸 선물 받는 사람은 어떤 기분이 들까. 아. 난 참 나의 성공을 바라는 좋은 친구를 두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고, 혹은, 내 인생이 그렇게도 패배자 같나 라는 자괴감을 들 수도 있겠다. 적어도 “넌 성공한 인생이야”라는 의미가 아니란 점은 분명하잖은가.
애써 책을 골라 선물했다고 해도(혹은 받았다고 해도) 선물 받은 책을 펼쳐보는 경우도 사실 드물다. 사람들이 책이란 걸 워낙 멀리하고 살아서이기도 하겠으나, 선물을 주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골라진 책이 나의 현시적 구미에 당기리라는 보장이 별로 없기 때문이겠다. 그렇다고 고르는 사람으로서 읽어보지도 않은 책을 선물하기란 영 껄끄러운 것이 아니고, 그렇다고 이미 그 사람이 읽었을법한 책을 고르면 아무래도 곤란하다. 그 사람이 그 책을 절대로 안 읽었으리라는 확신이 생긴 책이라야 선물해줄 의미가 있겠지만, 그럼에도 그 사람이 이 책을 읽고 싶어 해야 선물할 가치가 있을 것 아닌가.
원래 최고의 선물이란 ‘무척 갖고는 싶지만 내 돈 주고 사긴 싫은 물건’ 이라고들 하는데 어쨌든, 책을 선물할 때는 그 사람의 수중에는 분명히 이 책을 샀을 리 없지만, 나에게 이 책을 선물 받고 나서는 갑자기 그 책 갖고 싶었다는 생각이 들어야 한다는 문제가 있다. 이런 점들을 되새기면서 나름대로 책을 선물할 때의 선물 구매요령에 대해 정리해 봤다.
첫째, 신작 위주로 책을 고르면서, 선물을 받을 사람이 작가의 전작들을 소지하고 있는 경우 해당 작가의 신작을 주는 것이다. 안전한 선택이다. 그렇게 내가 선물한 책이 영영 책꽂이에서 뽀얀 먼지만 먹다가 잊히게 될 위험을 피했다. 하지만 이 방법의 경우, 선물을 받는 사람이 그 작가의 열렬한 팬이라면 당신보다 먼저 서점에 갔을 것이라 보는 것이 합리적인 추론이라고 하겠다.
둘째, 절대로 읽힐 리는 없지만, 책장에 꽂아둠으로써 그 존재가치를 다 하는 책들을 선물하는 것이다. 아까 말한 것처럼, ‘갖고는 싶지만 내 돈 주고 사긴 아까운 책’ 을 사는 것이다.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기야 하겠지만, 내 경우는 여행 서적들이 그렇다.
셋째, 오로지 자기 기준으로 판단해서, 자신에게 감동을 주었던 책을 선택해서 선물하는 것이다. 물론 선물할 때 그 말을 빼먹으면 안 된다. 상대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을 미리 고지하지 않으면 상대가 난감할 수 있다. 대상이 읽고 싶은 책을 선물하는 것이 아니라 읽어주길 바라는 책을 선물한다는 점에서 부담스러워 할 수도 있고, 선물해준 책을 안 읽었을 때, 섭섭할 수 있음을 고려해야 하지만, 주는 쪽도 받는 쪽도 책 선물의 묘미가 있는 방법이다. 책을 선물로 받고 싶어 하는 대다수 사람들은 이 방법의 선물 받기를 선호할 것이다.
김연수 작가의 여행서적 같은 산문집
그 후에 고민하여야 할 것이 바로 책의 내용과 제목이겠다. 서문에서도 이야기했지만, 그래도 생일 선물로 주는 책인데, 내용이 재밌고 좋다 한들 ‘바보들은 다 죽어버려라’ (2009, 카를르 아데롤드)라든지, ‘특성 없는 남자’ (2013, 로베르트 무질)같은 책을 생일에 선물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책 선물은 편지를 동봉한 선물과 다르지 않다. 사실 이것이 책 선물을 가장 어렵게 만드는 일 중의 하나인데, 편지와는 달리 내가 모든 텍스트를 의도할 수가 없음에도, 상대는 그 안에서 수많은 의미를 읽어 내기 때문이겠다.
‘좋은 책을 선물하면 되지 않은가’라고 간단히 대답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본디 좋은 책이란, 독자들의 가슴 한구석을 쓸쓸하게 만들기도 하고, 기분 좋은 햇살을 순식간에 우중충하게 바꾸기도 하는 것이다. 생일을 맞이하는 누군가의 기분을 쓸쓸하고 우울하게 만들고 싶은 생각이 아니라면, 포괄적인 의미의 좋은 책을 고르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다. 따라서 생일 선물로 골라야 할 좋은 책이란 어떤 의미에서 굉장히 협소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식상한 제목에, 다디단 내용만으로 꽉 찬 무성의한 시집들이 간혹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것을 보면 사람들이 얼마나 책 선물에 고뇌하는 지가 드러난다고나 할까.
처음엔 생일 선물로 주면 좋을 책들을 소개해 볼까도 생각을 해 보았으나, 역시 그런 선택의 고민을 누군가가 대신해준다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책을 선물하는 일도, 선물 받는 일도 모두에게 좀 더 재미있는 일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쓴 글이다. 덧붙여 내 생일도 5월이고.
_대충 소설가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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