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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9.03 슬프고도 웃긴, 무섭고도 비극적인

 

 

  드래그 미 투 헬(Drag Me To Hell), 뭐 이런 무서운 제목이 다 있는가. 지옥으로의 드래그라니 상상 만으로도, 입에 담는 것도 왠지 꺼림칙하다. 그렇지 않은가.

   여름의 끝자락, (설마 이 보다 더 더워지려나) 당신을 서늘하게 해 줄 영화 한편을 소개한다. 볼 사람은 다 본 샘 레이미 감독의 <드래그 미 투 헬, Drag Me To Hell, 2009> 이다. <드래그 미 투 헬>의 소감을 짧게 간추리면 이러하다. ‘영양소가 균형 잡힌 탄력 있는 몸매처럼 각종 요소가 알뜰하게 들어찬 매끈하고 탄성 넘치는 공포영화’ 라는 것.

   <이블 데드> 시리즈로 유명한 샘 레이미 감독이니 공포영화에 능할 것은 당연지사. 하지만 국내 홍보용 포스터에는 <스파이더맨> 감독이라는 문구로 홍보했었다. <스파이더맨> 샘 레이미 감독의 익스트림 판타지 호러라나! 뭐 틀린 말은 아니지만 <드래그 미 투 헬>을 보고 싶게 만드는 문구는 아닌 듯. 무려 <이블 데드> 감독이 아닌가.

   이렇다 할 유명 배우는 없지만 캐스팅이 또 절묘한데 뭔가 모르게 헐리우드 궁상미를 풍기는 알리슨 로먼( Alison Lohman, 크리스틴 브라운 役), 그의 착하디 착한 남자친구 저스틴 롱( Justin Long, 클레이 댈튼 役, 개인적으로 저스틴 롱은 그냥 정이 간다), 조연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한 모욕 당한 할마시 역할의 로나 라버(Lorna Raver, 실비아 게너시 役), 크리스틴에게 저주를 풀 방법을 일러주지만 챙길 건 다 챙기는 심령술사 딜립 라오(Dileep Rao, 람 자스 役) 등 등. 그리고 인상 깊은 손톱연기의 얄미운 회사동료 레기 리(Reggie Lee, 스투 루빈 役)가 있다. 

  

   대강의 줄거리는 이러하다. 매우 평범한 은행 대출 상담원 크리스틴은 약간의 콤플렉스와 일터의 치열함을 안고 살아가지만 어쨌든 사랑하는 연인이 있어 그런대로 삶이 즐겁다. 승진을 앞 둔 어느 날, 30년 동안 지켜온 집의 대출금이 밀린 한 노파의 대출 상담을 맡게 된다. 크리스틴은 한편으로는 집을 잃게 되는 노파가 가엾지만 승진을 위해 회사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호한 결단도 필요하다고 생각해 노파의 간절한 부탁을 거절한다.(어찌 보면 그렇게 간절해 보이지도 않았다. 불쌍한 노인네의 부탁을 거절할까 싶어 하는 노파의 태도가 살짝 거슬렸다)
  
   자신의 간곡함을 외면하자 노파는 곧 돌변하여 크리스틴에게 저주를 내뿜는다. 모욕을 당했다고 느낀 노파의 절규는 가여움을 불러일으키기엔 이미 너무 무섭다. 지옥으로 드래그 하는게 취미인 염소악마 라미아의 저주를 불러온 노파 덕에 크리스틴은 점점 감당할 수 없는 일상을 버티게 된다. 과연 그녀는 드래그 되었을까.
 
   개인적으로 매력적인 공포영화의 조건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슬프고 웃기면서 무섭고 결국엔 비극적이어야 한다’는 것인데 <드래그 미 투 헬>은 그 모든 것을 갖췄다. 이번 호 주제가 ‘4’이니 이에 걸맞게 이 네 가지 매력을 파헤쳐 볼까 한다.

 

1. 이 영화, 일단 슬프다.
   일단 주인공 처자 크리스틴은 궁상맞아 보인다. 가지런한 용모지만 어딘지 모르게 불안함이 얼굴에 뭍어 난다. 그녀의 일상은 터프함이 촘촘히 박혀있다.
   사랑받고 있지만 남자친구의 집에서 환영할만한 조건을 갖추지 못한 자신의 처지에 낙담하고 열심히 일했지만 들어 온지 얼마 안 된 동료 스튜와 승진 경쟁을 해야 하는 게 짜증난다. 자신의 능력이 상대보다 나음을 끊임없이 어필해야 하는 피곤함을 당신도 알지 않는가. 사실 스튜 역시 얄밉지만 절박하고 다소 불쌍해 보이는 아시아인 캐릭터?다. 경쟁이란 경쟁에 참여한 자들 모두를 불행하게 만든다.(경쟁이 불필요하다는 것은 아니고)
  
그녀의 슬픔은 노파의 저주와 함께 배가된다. 노파의 부탁을 거절한 것은 안타깝긴 하지만 지옥으로 드래그 될 정도는 아니다. 자신이 당한 모욕을 되갚아주려는 노파의 저주는 필요이상으로 과잉되었다. 뺨을 한 대 올려붙였다고 칼부림을 한 꼴이다. 그런 크리스틴의 억울함은 그녀를 희생자로 만든다. 그녀를 따라다니는 저주의 그림자와 그로부터 벗어나려는 그녀의 처절한 몸부림은 영화 내내 보는 이를 슬프게 만든다. 크리스틴의 불행은 결국 영화의 불행이다.

 

2. 이 영화 근데 또 웃기다.
   무섭고 끔찍한 존재들이 과장되게 등장하는 방식, 또 이를 저지하려는 크리스틴과 할매의 사투는 어딘지 우스꽝스럽다.
   과장된 반응들. 이를테면 코피가 한 방울 떨어지는가 싶더니 급작스럽게 마치 혈관이라도 터진 듯 입과 코에서 피가 분출하는 광경이라던가, 할매를 저지하려다 그녀의 입에 꽂힌 크리스틴의 팔뚝, 머리가 압박되어 눈알이 용수철을 단 듯 튀어나오는 모습이랄지, 틀니가 다 빠진 할매가 입으로 얼굴을 핥는 행동들은 뭔가 모르게 무섭지만 웃음이 솟구친다. 난데없고 과장된 드립이 웃음 포인트.

 

 

3. 그래도 어쨌든 무섭다.
   이 영화의 공포 요소를 다시 4가지로 정리해보자. 하나는 크리스틴이 지극히 평균적인 인물이라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지우고 싶은 과거나 콤플렉스는 있고 착하게 살려하지만 내 이익과 상충될 때는 미안하지만도 나에게 유리한 선택을 하게 된다. 누구라도 크리스틴의 상황과 처지에 놓일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영화를 보면서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하나의 장치로 작동한다. 갈등과 선택의 순간,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부분이 지극히 평범한 우리의 삶을 오히려 뒤흔드는 것이다. 어떤 일이 초래될지 선과 악의 경계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으니 결과는 늘 예측할 수 없다.(딱히 크리스틴이 악해서 저주에 빠진 건 절대 아니지만)

   다른 하나는 일상의 요소들이 공포를 자아낸다는 것이다. 이 영화는 경제적이다. 정말 돈도 별로 안들이고 우리를 서늘하게 만드니 어쩜 이리 영리한지.
기괴하고 신경을 거스르는 소리를 기본으로 음산한 바람, 날리는 손수건, 스테이플러, 안전벨트, 틀니, 파리, 손톱, 커튼, 그림자, 케이크, 포크, 고양이 등 일상의 아주 작은 요소들이 공포를 자아내는 장치의 전부이다.(소스라치게 놀라움을 자아내는 할매의 등장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할매는 불쌍한 노파에서 왜인지 어느새 거의 지옥의 사자로 변모한다) 소소하게 일상을 변질시키고 정신착란을 일으키는 작은 변화들 말이다. 일상은 이토록 쉬이 뒤틀려 버린다.

   또 하나는 크리스틴의 공포가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래도 공유할 수 없다는 점에 있다. 침대에 함께 누워있어도 그녀의 꿈과 일상을 파고드는 공포는 오롯이 그녀의 몫이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으며 함께 할 수도 없다. 얼굴에 쏟아내는 구더기를 뒤집어써야 하는 것도, 할매의 공격에 주먹을 내던져야 하는 것도, 섬뜩한 악마와 대면해야 하는 것도 결국 자기 자신이다.

   마지막 하나는 그 저주의 굴레를 도무지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무서운 일들에 지친 크리스틴은 승진이고 뭐고 대출도 연장해드리고 할매에게 사과하고 모든 걸 바로잡고 싶어한다. 그래서 찾아간 할매는 이미 죽었고 할매의 장례식장에 모인 사람들은 할매의 죽음이 그녀 탓인 양 당해도 싸다는 태도다. 저주를 피하고자 다른 이에게 저주를 옮기려 하지만 마음 약한 크리스틴은 결국 죽은 할매의 영혼에 저주를 되갚고자 한다. 하지만 그 모든 노력 역시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배려로 인해 수포로 돌아간다.

 

4. 비극이어라
   저주의 주인은 결국 바뀌자 않았다. 벗어나려는 처절한 노력이 처절하면 처절할 수록 이 비극은 배가된다. 노력이 거세면 거셀수록 그 애씀이 크면 클수록 그녀의 비극은 클라이막스를 향해 달려간다.

   영화를 보고 있자니 나중에는 급기야 선명한 화질도 두렵고 이질적으로 느껴지더라. 이제 이야기를 마무리 해야겠다.

   영화 도입부에 억울하게 드래그된 소년의 운명은 결국 영화 전체를 관통한다. 벗어날 수 없는 그녀와 당신의 운명 말이다. 그녀의 불행과 저주는 대출을 연장해줬으면 피해갈 수 있었을까. 아마도 그녀의 일상은 그녀를 더 옥죄었을 것이고 다른 방식으로 할매에게 모욕감을 선사하게 됐을 것이다.

   <드래그 미 투 헬>의 공포는 억울함과 수치심, 모욕감이라는 감정에서 불이 붙어 신경을 거스르고 불안을 선사하다가 피할 수 없는 결말로 치닫는다. 그 비극성이야 말로 우리를 공포에 몰아넣는다. 영화 자체의 색감도 복고적이고 스타일리쉬해서 보는 내내 즐겁다.

   이 영화에서 교훈을 얻고 싶은가. 만약 그렇다면 그렇게 생각하는 당신이 나는 가장 공포스럽다. 제발, 그저 이 두려움과 슬픔, 웃음과 눈물의 짬뽕을 온갖 신경을 곤두세워 즐기고 전율해 달라. 그러면 족하다.

_다르덴 자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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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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